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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경남_HOTcilp데스크(TV)

고도성장의 주역 '노동자'의 삶은?

◀ 앵 커 ▶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창원국가산업단지는
우리나라 기계산업을 이끌어왔는데요

산단의 주역, 노동자들의 삶은 어땠을까요?

부정석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우리나라 기계산업 중심지 창원국가산업단지.

초창기인 1974년, 이곳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 이상 일을 해야 했고
쉬는 날도 거의 없었습니다.

◀ INT ▶김진록/1980년대 창원국가산단 'A'업체 입사
\"이제 한 달에 한 번, 두 번 노는(쉬는) 정도..저임금 장시간 노동 이게 생활화되다 보니까 그런 쪽에서 계속 얽매여 살았죠\"

일부 공장엔 기숙사가 있었지만
대다수 노동자들은 셋방살이를 했습니다.

당시 창원엔 이렇다 할 셋방이 없어
마산 판자촌으로 모여들었습니다.

◀ INT ▶장계성/1980년대 창원국가산단 'B'업체 입사
\"판자촌 생활, 옛날에 농사짓는 사람들이 자기 소 마구간이나 돼지 키우던 자리를 칸을 만들어서 그런 데서 생활했죠\"

월급 대부분을 고향 가족들에게 보내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습니다.

판자촌에서 주간조와 야간조를 바꿔가며
여러 명이 눈만 붙이며 생활했습니다.

◀ INT ▶이경수/1990년대 창원국가산단 'C'업체 입사
\"매일 돈 없어서 주변에 손 벌리고 어떤 제대로 고기 한 번도 그때 제대로 못 먹을 때니까 힘든 시기였죠\"

열악한 작업 환경 등으로
일하다 다치거나 숨지는 일이 잇달자
1980년대 창원국가산단에선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차츰 높아졌습니다.

1981년 풍성전기, 화천기계, 효성기계부터
1983년 창원공단 최대 규모인 한국중공업,
지금의 두산에너빌리티 노동자들이
조합을 설립했습니다.

◀ INT ▶주재석/1980년대 금속노조 경남지부 노조원
\"임*중역진은 쳐다보지도 못할 사람들이었고중간관리직들은 군대에서 장교급이었고 일반현장직들은 사병이었죠..얼차려 엎드려뻗쳐 하고 이러면서 살았습니다\"

사측도 거세게 대응했습니다.

조합원들을 강제사직으로 해고하고
조합을 해산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이어진 창원지역
노-사간의 투쟁과 탄압은
1987년 유월항쟁 이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 결성으로 이어집니다.

개별 사업장을 넘어
지역 단위 노동운동으로 확대됐습니다.

◀ INT ▶장계성/1980년대 창원국가산단 'B'업체 입사
\"내 동료가 부당한 것에서 당하니까 내 동료를 도와줘야 된다 그런 마음으로 출발했죠. 동료 의식이 생기면서 그리고 우리 노동조합은 우리가 지켜야지 단순한 것 밖에 없어요\"

이 영향으로
전교조와 언론노조, 지역의료보험노조 등
비제조업 분야 조합도 만들어졌습니다.

◀ st-up ▶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창원국가산단 고도성장엔
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함께 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MBC NEWS 부정석입니다◀ END ▶
부정석
도교육청, 환경, 진해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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